라이프/잡문집(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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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전생에 초식동물이었나 보다. 주변을 살피고 관찰하는 데 소질이 있다. 이런 행동은 초식동물의 특성 이라고 들었다. 어제는 친하다고 생각했던 선배와 절교했다. 차마 상처가 되더라도 사람이니까 "두 번까지는 그럴 수 있다"는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산다. 이번이 세 번째였다. 그 형은 원래 말을 그렇게 막하는 사람이 아니, 었다. 최근에 본 그의 입은 독설과 아집을 퍼나르는 창구였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적어도 내게는. 나는 그 형이 그렇게 된 건 과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술이 거의 매일 그의 입으로 들어가서 뇌를 갉아먹은 것은 아닐까. 언제부터인가 소주를 멀리하게 됐다. 소주를 즐겨 마시는 사람들 대부분은 '말술이었던 사람도' 예외 없이 사십 오십 되면 신체적으로 이상이 온다 직장 선배가 풍이 온..
2020.09.19 -
백은선 시인에게 당부하는 글
안녕하신가요, 백은선 작가님. 서울 마포구에 사는 백은선 산문 독자입니다. 저는 작가님의 시를 아직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가능세계라는 시집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어요. 며칠 전에 영풍문고에서 한 권 사려고 했는데 재고가 없어서 헛걸음 했어요. 주간 문학동네에서 작가님이 쓴 '연재를 시작하며'를 읽고 그냥, 좋았습니다. 가슴 한켠이 시려오기도 하고, (작가님은 싫어하겠지만) 나랑 비슷한 색을 가진 사람이구나 하며 일종의 동질감과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오늘 를 읽고 글을 씁니다. 먼저 감사의 말씀부터 드립니다. 작가님 덕에 한강 작가를 다시 보게 됐거든요. 산문을 쓰는 외국 작가도 덕분에 소개받아 몹시 기뻤습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산문 마지막 즈음에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너무 싫다고 생각되면 꼭..
2020.09.18 -
manner
she is an American English teacher her hair loss has been severe since childhood according to her mouth she wears a bandana on her head i went to a bar a little far from Konkuk University Station with her darn, it's self service-bar here i hate self-service though she said with an awkward smile she's teaching young children in Gangnam she wants to learn Korean she met a Korean man on Tinder as s..
2020.09.13 -
무인양품에 바치는 시
무인양품 나는 무인양품이 두렵다 굳이 사지 않아도 될 것까지 결국 사게 만드니까 나는 무지가 두렵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결국 하게 만드니까 나는 감성이 두렵다 굳이 사거나 말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결국 사거나 말하게 만드니까 무인양품 매장에서 쇼핑을 마치고 출입문을 나서면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이성적인 사람이 된다
2020.08.24 -
영민이의 장례식
대학교에 다닐 적에 늘 붙어다니던 친구가 있었다. 대학교 MT에서 처음 본 영민이는 인상이 험악하고 곰처럼 덩치가 컸는데 왠지 정이 갔다. 우리는 같은 영문과에 다녔고 집도 서로 가까웠다. 영민이는 기아자동차 프라이드를 몰았다. 뿅카라고 불리던 비싼 오토바이도 있었다. 영민이, 건주, 나 이렇게 셋이 친했다. 영민이와 나는 학교 뒷편 오락실에서 철권이라는 게임을 자주 했다. 둘 다 막상막하였다. 수업이 끝나면 영민이는 늘 나와 건주를 집까지 자기 차로 바래다줬다. 우리에게 영민이는 형같은 친구였다. 영민이는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친구들한테 술도 사고 밥도 샀다. 영민이 차로 서울에 올라와 1박 2일로 여행했던 기억도 나는데. 어느 화창한 오후였다. 거실에 누워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2020.08.22 -
미국 시인 찰스 부코스키를 추천하는 이유
시가 살아 있거든요. 찰스 부코스키는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현대 시인의 이름이다. 지금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갔다. 찰스 부코스키는 독일계 미국인으로 로스엔젤레스에서 평생을 살았다. 사회의 낮은 곳에서 하층민으로, 노동자로 지냈다. 이십대에 글을 썼지만 주목받지 못했고 삼십대에 큰 병을 앓고 죽다 살아난 뒤 시와 소설을 쏟아냈다. 찰스 부코스키에게 전업으로 글을 쓰면 평생 100달러를 지급하겠다고 한 출판사의 제안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찰스 부코스키는 우연히 취직한 우체국에서 일하며 약 12년 간 시를 썼으며 50대가 되어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1994년 3월 백혈병으로 사망했으니 우리와 같은 시대에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시들은 종종 생동감이 없어서 읽기가 너무 힘든 경우가 있다. ..
2020.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