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카이 항공권을 비싸게 구하는 방법

2014. 5. 13. 00:59라이프/소탈한 여행기

3박 5일 일정으로 필리핀 보라카이에 다녀왔다. 작년부터 하와이, 홍콩, 마카오, 자카르타, 대만에 이어 보라카이까지 해외여행복이 터졌다. 이 정도면 여행신이 붙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 부서가 약 1주일간의 연휴를 갖게 돼 부랴부랴 일정을 짰다. 친하게 지내는 형님, 일명 '실장님'과 함께 보라카이를 여행하기로 한 것이다. 보라카이라니, 경상도 사투리 같기도 하고(보라니까!=보라카이!) 어딘지 모르게 정겨운 이름이다. 실장님이 보라카이가 정말 좋다고 했는데 귀가 얇은 필자는 보라카이 여행 떡밥을 냉큼 물었다. 

남자 2명이서 해외여행을 하는 것은 썩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부부끼리 여행을 해도 싸우는 마당에 남자 두 명이서 며칠동안 붙어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행히도 실장님과 나는 큰 다툼 없이 아름다운 보라카이의 풍경을 만끽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단 한번도 싸우지 않았던 건 내 공도 있었다. 필자가 "여행 초기부터 큰 사고를 치는 바람에 우리는 잘 뭉칠 수 있었다"고 본다. 영화 진주만의 벤 애플렉과 조쉬 하트넷이 보여준 전우의 끈끈함과 비슷한 무언가를 느꼈다고 할까. 편하고 좋은 것만 공유한 사람보다는 함께 고생한 사람과의 인연이 훨씬 더 오래간다.


여권 이름을 잘 못 기재했을 때 생기는 일들

이 글을 읽고 실제로 여권 이름과 항공권 이름을 다르게 기재하는 천재(天災, 재앙)가 나올까봐 걱정이다. 보라카이행 항공권은 실장님이, 리조트 숙박비용은 필자가 지불했다. 항공권을 예매하기 위해 전화로 여권 이름을 알려주면서 CHANG 대신 JANG 으로 성(Last Name)을 잘못 알려줬다. 새 여권으로 갱신하기 전에 사용했던 영문 성을 알려준 것이다. 

출발 당일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발권을 하는 과정에서 필자의 성이 틀렸다는 것을 발견했다. 필리핀항공편을 예매했기 때문에 우리는 필리핀항공 안내 데스크로 향했다. 안내 데스크의 직원은 본사와 통화해봐야 알 수 있는 사안이지만 5만원만 내면 이름변경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했다. 5만원이라니! 하루 종일 서울 시내를 낮은 포복으로 기어다녀도 못 찾는 금액이 바로 5만원 아닌가! 부랴부랴 ATM에 들러 5만원을 찾아왔다. 필리핀항공의 직원분은 변비에 걸려 2틀간 응가를 하지 못한 표정으로 "죄송하지만 안 될 것 같아요. 예매를 진행한 여행사에 이야기해서 처리해야 할 것 같아요"라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했다. 경보로 하나투어 부스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 직원분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잠시 기다려보라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좋은 꿈은 안 맞아도 악몽은 조심해야 한다고 했던가? 저 멀리서 직원분의 모습이 보였고 하나투어 직원분 역시도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항공권을 취소하고 다시 예매를 해야 떠날 수 있다고 했다.

수속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 긴박한 상황이었다. 직원분은 무빙워크를 지나 지하 1층에 가면 하나투어 사무실이 있으니 얼른 가서 티켓을 발권하라고 했다. 조낸 어려운 직원분의 설명에도 하나투어 사무실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던 건 대한항공 승무원 때문이었다. 승강기에 함께 탔던 승무원은 안젤리나 졸리와 닮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설사를 바지에 지릴 듯한 표정으로 물어봐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빠르고 친절하게 하나투어 사무실을 알려줬다.

하나투어 사무실에 도착해 보라카이표 끊으러 왔다고 간결하고 신속하게 이야기했다.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는 직원분과의 어색한 시선교환이 끝나갈 무렵 옆에서 흡사 수지의 이마를 닮은 직원 한분이 "전화 받았어요. 이쪽으로 오세요!"라며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수지의 이마를 닮은 그녀는 우리 일행의 오는 일정이 달라질 수 있는데 괜찮겠냐고 했다. 잠시 후 같은 비행기에 좌석이 났는데 티켓 가격이 80만원이 넘는다고 했다. 헉! 처음 예매한 가격은 왕복 30만원대였는데 거의 3배 가까이 높은 가격에 티켓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는 수 없이 원래 티켓 예매액의 약 2배인 60만원을 넘는 금액을 주고 티켓을 구입했다.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머리와 가슴 속에서는 이미 1리터의 눈물이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2배 더 비싼 항공권을 구입했다고 해서 이코노미석이 비즈니스석이 되거나 퍼스트클래스석이 되지는 않았다. 여행을 다녀오니 환불도 100%가 아닌 약 50~60% 의 금액만 돌려준다고 했다. 항공권 재발급 때문에 50만원의 손해를 봤다. 게다가 귀국 일정이 뒤로 늦춰져 숙박도 하룻밤을 더 있다가 돌아와야했다. 리조트도 아니고, 모텔도 아닌 것이 마치 여인숙과 같은 허름한 곳에서 하루를 더 머물러야 했다. 

푸른 바다가 절경을 이루는 보라카이 해변

 

Beggars can be Choosers!

여권 이름을 다르게 알려줘서 금전적인 비용, 정신적인 비용, 시간이라는 비용이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기분이 몹시 상했을테지만 이제는 조금 덤덤해졌다고 해야 할까. 어느 때 부터 나쁜 일이 생겼다고 해서, 심하게 좌절하지 않는다. 나쁜 일이 생기면 좋은 일도 생기고 반대로 좋은 일이 생겼다가도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을 경험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마음의 근육이 단단해진 것 같다.

여행 처음에 큰 사고가 터졌을 때도 좌절감 보다는 왠지 재밌고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보라카이 여행에서 소중한 인연들을 만났다. 분실한 카메라 가방을 보관하고 있다가 건네주던 까티끌란 항구의 직원, 티셔츠와 모자, 방수팩을 공짜로 건네준 글로벌 모바일앱 바이버(Viber)의 마케팅 담당 직원, 부산대학교에서 유학중인 노란머리 데니스와의 인연과 추억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이다. 이들과의 인연을 차례로 엮어 연재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보라카이 덕에 지갑은 가벼워졌지만 소중한 추억과 인연 덕분인지 마음만은 부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