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의 추억 1편 영화 SI 회사 마케팅 팀장

2020. 12. 1. 07:55라이프/이것저것 리뷰

마케팅 면접만 30번 이상 봤다. 대부분 중소기업 혹은 스타트업이었다. 스타트업은 중소기업 중에서도 규모가 작고 근무환경이 열악한 회사를 뜻한다. 여러 차례 면접을 보니 면접 결과란 주관의 영역이며 감정의 영역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 수많은 지원자들과 회사 인사담당자를 연결해온 헤드헌터분들도 이런 나의 얘기에 맞장구를 쳤다. 며칠 전에는 한 헤드헌터의 제안으로 매출 100억의 영화 SI 회사 마케팅 팀장 포지션 면접을 보고 왔다. 이번 면접에서 과거 면접에서 본 패턴을 다시 보니 지나칠 수 없었다. 나름의 소상한 기록을 남긴다.

 

패턴 1 '실무자 동석 요청'

과거 지방에 있는 게임회사의 마케팅 팀장 포지션 면접과 흡사한 일이 벌어졌다. 면접장에 도착하자 대표가 실무자를 불러 앉혔다. 헤드헌터의 말로는 대표 1명, 본부장 1명까지 총 2명과 면접을 보기로 했는데 갑자기 2명을 추가했다. 게임회사 면접 당시의 일화가 떠올랐다. 당시에도 총 4명의 면접자가 필기구를 들고 내가 하는 말들을 열심히 적었다. 마치 교수님의 수업을 필기하는 학생들처럼. 두 회사가 똑같았다. 우연이겠지. 그럴 거야.

 

패턴 2 '면접에 어울리지 않는 질문'

이커머스 사이트 기획, SNS 운영을 주업무로 하는 마케터의 면접에서 연관성이 없는 질문을 했다. 예를 들면 본부장이라는 사람이 "저희 사업소개서 보셨나요? 사업소개서에서 개선하면 좋은 부분이 뭘까요?"라고 물었다. "두 단어가 중복이 되어 쓰여서 자연스럽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커머스 구축 서비스로 아임웹을 추천했고 디자인 에이전시는 플러스엑스를 추천했다. 본부장은 내 말을 노트에 열심히 적었다. 

 

나는 생각했다. "아, 이 분들 결국 아이디어만 먹고 불합격 통보하겠구나!".

 

혹시나가 역시나로 변하기까지 채 3일이 걸리지 않았다.

 

패턴 3 '표정으로 드러나는 진심'

어느 대리(직급)의 안내로 대기실에 5분 정도 있다가 면접장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면접관들의 표정을 봤다. 전혀 관심없는 표정이었다. 누군가는 표정을 보고 어떻게 진심을 파악하냐고 이야기할 것이며 당신이 예민하다고 예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1시간동안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하다 보면 결국 숨겼던 표정에도 진심이 드러나는 법이다. 특별한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표정에 진심이 묻어나오게 되어 있다. 

 

"혹시 추가적인 질문 있나요?"라는 말도 여러 차례 나왔다. 이 말의 의미는 "나는 더 물어볼 것도 없는데 궁금한 게 있는 분 있으면 이야기 하세요"로 바꿔볼 수 있다. 이 말을 두 번 이상 들었을 때는 나 역시도 표정 관리가 안 됐을 것이다. 거울은 보지 못했지만 "아, 또 똥을 밟고 말았구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언 '자문을 구하려거든 돈을 내시오'

면접에서는 면접에 꼭 필요한 질문만 하는 게 좋다. 면접관이 갑이고 면접자가 을이라는 생각에 빠져드는 순간 질문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과거에 게임회사에서 면접을 보고 나와 "이 회사는 자문을 구하려면 돈을 내야지. 면접자를 불러놓고 자문을 구하면 어쩌나. 면접자의 취약한 상황을 이용해 정보를 취하다니 정말 나쁜 회사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번 회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문을 구하려거든 지원자를 면접자가 아닌 자문위원의 신분으로 초청하고 비용을 지불하는 게 맞다.

 

어느 커뮤니티에서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네티즌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면접에서 아이디어를 착취하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했다. 면접관으로 참석했던 분들께 감히 조언을 하며 마친다.

 

갑의 지위를 이용해 을을 착취하는 갑질은 재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갑과 을의 상황에서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좀 더 세련된 매너를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착하게 살아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