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

2020. 10. 22. 08:33글/씀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가는 게 아니었다. 인천공항을 목적지로 여행하는 사람들에 관한 뉴스를 봤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비행기날개를 묶기 수년 전의 기사였다. 사람들이 뜨거운 여름을 피해 공항으로 피서를 떠난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몰랐다. 그들이 공항으로 여행을 떠나는 진짜 이유를.

 

일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을 했는데 당분간 해외를 나갈 길이 사라졌다. 공항이 보고 싶어졌다. 김포공항 말고 인천국제공항에 가야지 계획했다. 어렵게 일정을 짜거나 할 필요가 없었다. 다음 날이 되면 지하철에 몸을 싣고 인천공항 제2터미널역에서 내리면 되니까. 일몰이 시작될 무렵인 4시가 조금 넘어 출발했다. 공항 안으로 쏟아지는 노을빛을 만나길 기대하면서.

 

시집을 한 권 챙겼다. 지하철에서 왕복 두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무료할까봐 책을 여행친구 삼기로 했다. 문을 열고 집밖으로 나서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아아 이게 얼마만의 공항이란 말인가.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디지털미디어시티역 공항선 열차에 올라 빈자리에 앉았다. 평소에 보이던 무수한 캐리어는 보이지 않았다.

 

부러 창밖이 제일 잘 보이는 중간 자리에 앉아 빨리감기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한참동안 차만 보이더니 어느덧 그림같은 산과 들이 창밖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열차에 탄 다른 승객들은 고개를 숙이고 자거나 스마트폰을 보고 있기 때문에 눈을 마주칠 일도 없었다.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보는 자연 시네마는 어쩜 그리 싱그러운지.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입을 벌리고 있어도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옆자리에 담배냄새에 찌든 사내가 앉았다. 코를 가리고 있는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불쾌한 냄새란. 덕분에 옆 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집을 읽다가 창밖을 보고 창밖을 보다가 시집을 읽고 하는 반복이 소소한 기쁨을 안겨줬다. 시집을 절반쯤 읽었을 무렵 인천공항 제2터미널역에 도착했다는 안내메시지가 나왔다. 몇몇 사람들과 함께 내려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길에 이렇게 사람들이 적은 건 처음이었다.

 

공항 내부로 발을 딛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얼른 수속을 밟으러 빨리 걸어야 할 것 같은 설렘이 가슴을 흔들어놓았다. 어질러진 가슴을 애써 외면한 채 찰칵 사진을 찍었다. 엘리베이터 옆 안내표지판도 찍고 출발층으로 향하는 계단도 찍었다. 출발층인 3층에 도착하자 커다란 알파벳이 눈에 들어왔다. A, B, C, D, E, F...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기대했던대로 주황색 노을이 공항 안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고개를 양 옆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며 걸어보았다. 텅빈 벤치가 생경했지만 금세 당연한 장면으로 기억되었다. 유니폼을 멋지게 차려입은 기장과 승무원이 빠르게 걸어가고 있었다. 1번 출발 게이트 앞에는 비행기를 타려고 준비하는 사내와 그와 작별인사를 나누는 아내와 아이들의 표정이 보였다. 웃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쓸쓸한 모습에서 잔잔한 감동이 느껴졌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커플이 벤치에 포개어 앉아 있었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걸까, 아니면 나처럼 공항으로 여행온 걸까?

 

대한항공 수속 데스크에 어느 여성이 서 있었다. 부러운 마음에 한참을 바라보았다.

 

출발 비행기편을 전광판으로 보는 일도 재밌다. 한 시간 뒤면 방콕 수완나품 공항으로 대한항공 여객기가 출발하는구나. 두 시간 뒤에는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이들도 있겠구나. 그저 부럽구나. 뭐하는 사람들일까. 일 때문에 가는 걸까, 여행으로 가는 걸까?

 

잰걸음으로 햐안 실내를 벗어났다. 노랗고 파랗게 물든 하늘을 보니 낭만적인 노래를 듣고 있는 듯 애애절절해졌다.

 

활주로 위로 대한항공 비행기가 서너대 보일 뿐이었다. 버스 정류장에는 아무런 버스도 정차하고 있지 않았다. 짐을 실어나르는 카트는 서로 마주안은 채로 때이른 겨울잠에 들어갔다. 버스정보안내 안내표는 덩그러니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흡연실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주로 공항에서 일하는 직원들이었다. 타인의 숨이 그리웠는지 좁은 굴에서 서로의 냄새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친한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지내는지 안부 물으려 전화했다고 했다. 공항으로 놀러왔는데요. 어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어요라고 했다.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아요라고 그는 말했다.

 

다음 주에는 같이 여행을 가자고 했다. 전화를 끊고 잠시 걷다가 다시 공항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집나온 고양이처럼 여기저기 둘러보며 눈으로 냄새를 들이켰다.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은 하루종일 사람에 지친 똑같은 얼굴들로 가득했다. 시집을 모두 다 읽고 두어 정거장을 지나 홍대입구역에 도착했다.

 

하늘은 짙은 파랑이었고 마음은 옅은 분홍이었다.

 

가까운 곳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듯 상쾌해졌다.

 

공항에 다녀오길 잘했다며 홀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