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서평

2020. 10. 4. 17:27라이프/글쓰기 책읽기

마냥 아쉽다. 박준 시인에게 나쁜 감정은 없다.

 

시집 전체적으로 시인이 완전하게 자기 생각을 펼쳐놓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전라남도 해남 땅끝마을까지 도보여행하기로 계획했다고 치자. 고성에서 해남까지 10분의 6 혹은 7쯤에 해당하는 부산에서 멈추고 버스 타고 KTX 타고 서울로 돌아온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다리 아파서 그랬는지 의욕을 상실해서 그랬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의 시에서는 감정의 극단이 보이지 않는다. 혹자는 이를 '절제의 미'로 볼 수도 있지만 어딘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완전히 내보일 수 있는 것도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경계하는 움츠림이 보였다.

 

이 시집은 끄트머리에 있는 발문이 시 자체보다 좋았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미려한 분석은 박준의 시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신형철의 발문은 박준의 산문집을 읽고 싶어지게 한다. 발문이 시집을 살린다.

 

그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에는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라는 글이 있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발문 中

 

위의 글을 읽고 산문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롭지? 그런데 그건 외로운 게 아니야 가만 보면 너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도 외로운 거야 혼자가 둘이지 그러면 외로운 게 아니다" 본문 中

 

시에서 제일 좋았던 문장이다.

 

것입니다가 자꾸 거슬린다. 시인의 시에 유독 '것입니다'가 자주 나오는데 무척 거슬린다. 시인은 것입니다라는 높임말 표현으로 어떠한 맛을 내려고 했겠지만 내게는 시의 전체적인 맛을 방해하는 인공조미료에 불과했다. 나는 교정자가 아니기 때문에 문장의 구성이나 문법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시의 맛에 관한 얘기다.

 

박준 시인의 다른 책에서는 솔직담백한 날 것의 맛을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