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수집 7 김승옥 <무진기행>

2020. 9. 15. 10:32라이프/책&작가 평론

사람들이 입을 모아 추천하는 책이 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도 그러하다. 민음사에서 나온 무진기행을 세번이나 샀다. 한권은 빌려줬다가 못 받았고 한권은 실종됐다. 필사하려고 다시 한권을 샀다. 끈질긴 인연이다. 연필로 필사하는 일이 괴로워서 몇페이지 배껴쓰다 책장에 꽂아뒀다. '문장수집'에 소개할 목적으로 다시 <무진기행>을 꺼내본다.

 

소설 <무진기행>은 세페이지를 넘기면 나오는 '작가의 말'만 읽어도 책값 9천원을 뽑는다. 여태까지 읽어본 작가의 말 중에 가장 멋스러운 글이기 때문이다.

 

소설이란 추체험의 기록,

있을 수 있는 인간관계에 대한 도식,

구제받지 못한 상태에 대한 연민,

모순에 대한 예민한 반응,

혼란한 삶의 모습 그 자체.

나는 판단하지도 분노하지도 않겠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의미 없는 삶에

의미의 조명을 비춰 보는 일일 뿐.

 

1980년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