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수집 4 김훈 칼럼 <가로수의 힘겨운 봄맞이>

2020. 9. 12. 11:53라이프/책&작가 평론

술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분위기가 내게 술을 요구할 때 거부하지 않을 뿐이었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술에 금방 취하고 숙취도 오래 간다. 술을 마신 다음 날을 완전히 망쳐버리는 일이 열번쯤 됐을까? 술을 부러 찾지 않게 되었다.

 

어제는 교보문고에서 삐딱하게 서서 글을 읽고 있었다. 인터넷 신문사 편집부장 채형에게 전화가 왔다. "한 잔 하세" "어디서 볼까요?" 한달 만의 술이었다. 소주를 마시면 내일이 망가진다는 공포감에 맥주를 주문했다. 채형은 진로 소주, 나는 테라 병맥을 잔에 따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시시콜콜한 일상을 읊조렸다.

 

2차는 바로 옆에 있는 편의점 앞 노상 탁자였다. 이번엔 캔맥주였다. 채형은 기네스 나는 칭따오를 골랐다. 채형은 나와 닮은 구석이 있다. 취향이다. 문학, 영화, 미드 등 문화의 일부를 씹고, 뜯고, 밟고, 핥고, 깨물어보는 일을 즐긴다. 술자리의 안주인 셈이다.

 

어제는 김훈 <거리의 칼럼> 이야기가 나왔다. 채형은 <거리의 칼럼>이 더이상 연재되고 있지 않고 있는 걸로 알았다. 다시 시작했다고 이야기 하자 눈빛이 반짝거렸다. 이어 김훈이 기자들에게 끼친 영향, 끼칠 영향에 대해 나즈막하게 속삭였다. 내가 좋아하는 채형이 김훈을 수줍게 추켜세우는 걸 듣고 나니 김훈이 글이 더욱 단단하게 느껴진다. 오늘 읽은 칼럼 역시 그랬다.

 

나의 이성과 감성을 건드린 문장들을 발췌하며, 안녕히.

 

김훈 <가로수의 힘겨운 봄맞이>

- 깨어진 틈새에 가로수 실뿌리가 엉켜 있었다.

- 이음새를 비집고 올라오는 실뿌리도 있었다.

- 물과 공기에 주린 가로수의 실뿌리들은 보도블록 틈새를 파고든다

- 애처롭고도 맹렬한 생명이었다.

- 도심의 가로수들은 일제히 움을 틔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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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칼럼] 가로수의 힘겨운 봄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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