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구본준 기자가 말하는 직장인의 글쓰기

2015. 2. 3. 00:18라이프/책&작가 평론


구본준 기자는 살아있을 적 만화와 건축에 조예가 깊다는 평을 들었다. 한겨레 기획취재팀장·기동취재팀장·문화부 대중문화팀장을 거치며 한겨레 기자로, 건축기자로 널리 알려져있었다. 작년 11월 이탈리아 취재에 나섰던 그는 심장마비로 돌연사했다. 평소 구본준 기자의 글을 읽어오던 이들은 충격에 빠졌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비롯해 인터넷 세상에도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구본준 기자의 글을 검색하다 우연히 어느 출판사 편집자의 을 읽었다. 구본준 기자가 글쓰기 책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했다. 안타깝지만 이제 그의 글쓰기 강좌를 책으로 읽는 건 요원한 일이 됐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구본준 기자가 세바시에 출연해 '직장인의 글쓰기'를 주제로 강단에 올랐던 영상이 유튜브에 올려져있다. 영상으로 보는 것보다 글로 읽는 게 편한 독자들을 위해 필사했다. 구어체의 맛을 최대한 살리려는 목적으로 구본준 기자의 말을 빠짐없이 받아적었다. 


구본준 기자 세바시 강연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TwiafdbBbTU


네, 이렇게 환호성을 받아본 건 일생에 처음입니다. 아마 저도 영원히 기억할 날인데요. 반갑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하고 15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러 온 구본준입니다. 제가 하는 일은 소개를 드릴 때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되나 좀 생각을 해봤는데 제가 하는 일을 결국은 이제 '글'이라는 한 글자 밖에 없는 거 같아요. 제가 하는 일을 제가 따져보니까 제가 스스로 생각해도 좀 신기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글로 먹고 살게 됐지?" 뭐 이런 생각을 가끔 해요. 왜냐하면요. 저는 사실은 한 번도 제가 이제 "글을 쓰는 사람이 될거다"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원래 저는 기업에서 열심히 일을 하는 신입사원이었어요. 회사를 들어갔는데 꽤 큰 대기업이었는데 아주 좋았어요. 때 되면 밥도 주고 또 때되면 월급도 줘요. 너무 좋죠. 그리고 엠티도 가서 즐겁게 놀고. 제가 입사했을 때는 다행히 호황기여서 아주 행복했던 시절인데 회사를 이제 그만두게 됐습니다. 뭐냐면 갑자기 이제 회사에서 해외에 나가서 근무를 하라는 거에요. 근데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외국에서 살기. 그리고 더 싫어하는 게 날씨 추운 거였는데요. "그럼 제가 어디를 가야되죠?" 물어봤더니 북극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에 가서 단신 지사장으로 일을 해줘야겠다는 거에요. "아니, 그러면 왜 제가 가야 되죠?"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너는 그러려고 뽑았다" 그러시는 거에요. 그래서 화가 났죠. 아직 젊었을 때니까. 가족도 없고. 아니 그러면 처음에 뽑을 때부터 얘기를 해주시지 한 1년도 넘게 다녔는데 지금 와서 그 추운 나라로 가라니 "저는 못 갑니다"하고 멋있게 사표를 냈어요. 제 딴에는. 


근데 내니까 바로 백수가 되는 거에요. 그래서 이제 백수 생활을 하다가 신문을 보는데 기자를 뽑는다고 모집공고가 나왔어요. 그래서 "어? 이건 뭐지?"하고 보기 시작했죠. 그래서 "한번 해볼까?"하고 들어갔어요. 근데 아주 운이 좋게 들어갔어요. 거의 꼴찌로 들어간 거 같은데. 그런데 사실 제가 기자가 되려고 했을 때는 "글을 쓰고 싶다" 이런 생각은 거의 없었어요. 기자를 하면 "왠지 재밌어 보여" "새로운 경험도 많이 할 거 같아" 이런 생각을 해서 했는데 들어가자마자 이제 후회하기 시작한 거죠. 왜냐면 글을 써야 되니까. 한 번도 글을 안 써본 사람이 글을 쓰게 되니까 괴롭죠. 


근데 그때 저는 어떻게 생각했냐면 신문사는 글을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저처럼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알아서 굉장히 체계적이고 어떤 특별한 노하우를 가지고 글을 잘 쓰는 법을 가르쳐줄 줄 알았어요.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근데 전혀 없어요. 실제로 전혀 없습니다. 그냥 갔더니 "바로 취재해" 그러고 막 돌아다녀요. "기사 써와봐" 그럼 그 다음부터 이제 사실 신문사가 해주는 글쓰기 교육입니다. 뭐냐면 굉장히 아프게 핀잔을 줘요. 좋게 말해서 그렇지 저희 회사는 좀 덜한 편이었어요. 거의 다른 회사, 옆에 입사가 비슷해서 다 아는 동료들을 보면 "어우. 저거너 정말 내가 들어도 눈물이 나겠다" 싶을 정도로 정말 심한 말들을 많이 해요. 거의 인격 모독 아니야? 이런 말들도 많아요. 그런식으로 굉장히 혹독하게 가혹하게 비판적으로 "너는 어떻게 이런 거지같은 기사를 써왔니?" 뭐 이런 식으로 사람을 굉장히 몰아붙여요. 


그 이유는 이제 나중에 알게 됐죠. 그건 저희가 다루는 게 글이어서 그렇습니다. 사고로 몸에 상처가 나면 물론 완벽하게 고칠 순 없어도 수술로 이렇게 고칠 수가 있어요 어느 정도. 근데 글로 마음에 입힌 상처는 정말 안 지워지는 겁니다. 오보다. 그런 경우에는 당사자에게 정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지요. 그런 것들을 방지하기 위해서 굉장히 가혹하게 하는 것이었는데, 괴로웠죠. 글을 처음 써봤으니깐 쓰기만 하면 욕을 먹는데 일생동안 먹을 욕을 한 세 달 안에 다 먹은 거 같아요. 제가 봐도 제가 쓴 기사가 거지같을 때가 많거든요. 누가 또 그래요. "니 기사가 거지같아 보이면 그건 또 너의 글쓰기 실력이 향상된 것이다" 뭐 수준이 높아져서 니 글도 볼 수 있다고 하는 건데 전혀 위로 안 되죠. 늘 그런 일을 반복하고 있는데요. 


어쨌건 제가 그래도 나름 오랫동안 글쓰기를 하고 또 글에 대해서 자학도 하고 이런 식으로 살면서 제가 이제 느낀 것들을 딱 한 두 세 가지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실은 굉장히 많은 직업들을 보면요. 다른 거 같지만 같아요. 그리고 제가 그 분들을 만나면서 느낀 거는 오늘 강연 제목에도 써 있듯이 정말로 글을 잘 써야되는 사람, 글이 가장 소중해야 되는 사람은 학자나 기자, 작가처럼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분들 보다도 직장인이라는 겁니다. 


왜 직장인들이 글을 잘 써야 되냐? 작가도 아닌데. 그거는 지작인들이야말로 평생 글을 쓰는 사람들이어서 그래요. 그 글을 우리는 문서라고 부를 뿐입니다. 그거 굉장히 중요한 글입니다. 왜 그러냐면 저희같은 기자나 작가들이 쓰는 글은 읽는 순간에는 읽는 분들에게 재미도 주고 의미도 나름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조금 지나면 휘발되어 사라지는 그런 거에요. 하지만 직장인들이 만드시는 문서는, 그 글은 그 직장인을 만들어주는 겁니다. 그 사람들의 일을 하게 해주고. 직장인들이 그렇잖아요. 직장인들은 직장인들이 만든 문서로 평가받는 존재일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거는 직장인들은 그 문서를 통해서 자기 일을 해내고 자기 꿈을 이룰 수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겁니다. 


"언제나 (제목)을 생각하자"


자, 이 안에 들어갈 거는 수도 없이 많죠. 여기서 들어갈 거는 '제목'입니다. 글에서 제목이 중요하다. 당연하죠. 신문사에는 저 같은 취재기자들이 있고요. 또 다른 기자들이 있습니다. 편집기자분들이에요. 다 들어보셨죠? 편집. 근데 무슨 말인지는 정확하게 잘 알기 어려운 '편집'이라는 단어. 근데 신문사 조직도를 보면요. 저희 같이 취재하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에 취재국, 취재본부 이래야 될 거 같은데 그 이름은 '편집국'으로 되어있습니다. 그 말은 무슨 소리냐. 편집기자가 훨씬 중요하다는 얘기에요. 


편집기자들은 어떤 일을 하냐. 저희들이 취재 기자들이 하루에 글을 제일 많이 쓰면 아마 원고지 한 20매 정도를 써요. 20매면 4,000글자죠? 편집기자들은 제목을 다는 기자입니다. 근데 이분들은 많이 쓰면 한 40글자 정도 쓸 거에요. 글자수로 보면 100분의 1의 일을 하는 거죠. 근데 월급은 같아요. 그리고 취재국은 없어도 편집국은 있어요. 그만큼 제목이 중요합니다. 


제목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이유는 "왜 그럼 중요하냐" 그게 중요하죠? 제목이라는 거는 나침반 같은 거에요. 우리가 글을 쓰기 어려운 이유는 글을 처음에 쓸 때는 막 "한 번 써볼까?"하고 즐겁게 써요. 근데 쓰다보면 막 꼬이고 또 생각이 막 자꾸 옆으로 번져나가요. 그래서 어? 하고 쓰다보면 글은 자꾸 옆길로 새기 쉽죠. 그래서 어, 이러면 안되는데 그러다가도 지금 쓰는게 또 즐거워서 나름 쓰고 나면 완전히 딴 데 가 있고. 그래서 보고 나면 실제로 하려던 얘기는 요만큼이고 옆길로 간 게 이만큼인데, 아깝잖아요. 버릴 수도 없고. 이런 표현은 뭐 내가 봐도 잘 쓴 거 같은데? 남겨놓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할 얘기는 사라져 있고. 늘 이런 미궁에 빠지는 게 글쓰기거든요. 저도 그래요. 지금도 그러고 있어요. 원래 쓰려던 것의 한 80%나 정확하게 쓰는지 모르겠어요. 한 60에서 70% 정도 가고 나머지 30%는 저도 곁가지로 빠지는 거 같습니다. 근데 이럴 때 우리를 다시 원래 글을 쓰려던 목적으로 데려가 주는 게 제목입니다.


제목이 아주 매력적이면 좋죠. 그게 아니더라도 키워드 하나라도 충분히 제목이 됩니다. 이번 키워드의 제목이 '소풍'이다. 그럼 소풍가는 얘기만 하면 되는 거죠. 소풍과 야유회의 의미 차이는 무엇일까? 뭐 이런 걸로 넘어가는 순간 글은 이상해지는 겁니다.


요리가 그래요. 내가 만약에 어떤 시금치로 요리를 하겠다. 그럼 시금치 맛으로 승부를 해야됩니다. 물론 양념도 넣을 수 있어요. 시금치의 맛을 좀 더 돋보이게 해주는 그런 역할을 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양념처럼 넣는 게 시금치 맛을 압도해서는 안 돼요. 제가 원래 하려던 거는 시금치거든요. 요리를 할 때 그렇지 않습니까? 이게 맛있어 보인다고 이것저것 다 집어 넣으면 사실은 개밥이 되는 거나 똑같은 이치인 거에요. 


글이라는 것, 모든 게 그렇지만 글도 버리기 게임입니다. 버려내는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해요. 그런 것들이 전부 다 우리의 생각을 키워주고 우리가 원래 하려던 일의 의미를 밝혀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중한 거에요. 아주 단순합니다. 


글을 쓰다 꼬이면 내 글의 제목이 원래 뭐였지? 나는 왜 이 글을 쓰려고 했지? 무엇 때문에? 그걸로 자꾸 돌아가는 겁니다. 그게 아니면 가차없이 정말 마음이 아파도 주옥같은 표현이라도 버리세요. 개밥이 되기 싫으면.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관점보다 (시점)이 중요할 수 있다"


두번째로 중요한 거는 사실은 요 안에 들어갈 게 뭐냐면 '시점'이에요. 관점, 되게 멋있는 겁니다. 누구나 글을 쓸 때는 나만의 관점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게 기획서건 회사에 쓰게 되는 경위서건. 제가 어제 그런 사고를 저지른 것은 사실은 이런 문제 때문에 정말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저만의 어떤 관점으로 설득하고 싶죠. 


근데 이 관점이라는 것은 사실 어떻게 보면 정말 중요하지만 살면서 우리가 나만의 관점, 정말 세상에는 없고 나만 가진 생각, 나만 보여줄 수 있는 어떤 이야기,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는 글은 일생동안 그렇게 많지 않아요. 매번 그런 글을 쓸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매번 다른 관점으로. 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글이라는 거는 오히려 시점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것이 기사든, 소설이든, 어떤 글이든, 인터넷 댓글이든. 그 때에 맞는 글이 가장 좋은 글입니다. 늘 시점을 생각하시는 게 좋습니다. 내가 이맘 때는 요런 걸 해야 된다. 일을 할 때 그렇죠. 그럼 그 일을 위한 문서를 내는 거죠. 


회사에서 부장님이 김대리를 불러서 "이번에 우리 부서 MT 가려고 그러는데 김대리가 MT 기획안을 짜봐"라고 시킬 수 있어요. 그러면 이제 제일 중요한 건 뭐겠어요? 부장님이 어느 MT 장소가 좋은지 파악해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두고 뭐 이메일이든, 뭐 기획안이든 부장님께 드리는 게 제일 중요하죠. 


그런데 거꾸로 생각할 때도 있어요. 정말 이번에 내가 직장인 MT의 완전 결정판을 보여 드려야겠다. 그래서 직장인이 가기 좋은 MT 장소 베스트 100을 뽑아서 한 20장으로 일주일 늦게 드려본다고 생각합시다. 너무 단순한 거 같지만 현실에서 이런 일이 많을 거에요. 제가 부장님이라면 일단 화부터 내겠어요. "야, 지금. 지난 주에 줘야 되는데, 내일 모레가 MT인데 이제야 갖고 오면 어떡해?" 두번째로 "100개를 언제 보니?" 그럼 뭐 부장님은 화를 내고 김대리는 속상하고. MT 가기 전부터 분위기는 완전 엉망이 되는 거죠.


시점이라는 거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제 베스트셀러라는 걸 보면 굉장히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내용을 다룬 책들일 것 같지만 사실 안 그렇다는 걸 아시잖아요. 책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어떤 시점에 궁금해 하는 것들을 이렇게 가려운 데를 긁어주듯 딱 때를 맞춰 나와 주는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이 말은 굉장히 시점이라는 거죠.


"무엇보다 글쓰기의 전제는

상대에게 반드시 전하려 하는 게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빼어난 문장, 화려한 문장,

품격있는 문장이라는 것은 없다.

정확하고 간결한 문장이라는

이상만 있을 뿐이다."


여기서 '글'이란 글자는 '일'로 바꿔도 된다. 


자. 그래서 마지막으로 소개시켜 드릴 문장은 이 문장입니다. 소설이건, 인터넷 댓글이건, 회사에 제가 내는 기안서건 다 똑같은 글입니다. 그 글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대로 반영해서 남들에게 전달해 주면 되는 겁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이라는 거는 늘 우리에게, 아주 괴롭지만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메세지를 끊임없이 던져주는 겁니다. 단, 힘들더라도 제목만 좀 잘 생각하고 지금 혹시 때가 맞는지 요것만 생각해서 쓰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와주신 분들이 괴롭지만 또 재밌는 글 속에서 자기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런 기쁨을 맛보시면 좋겠습니다.


이야기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